본문 바로가기
수필

지리산

by 권오갑변호사 2015. 11. 23.

지 리 산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고통의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고통의 시간을 잊기 위해서 또는 새로운 각오를 위해서 1996년 봄 지리산을 찾았다.


나는 군에서 제대 후 1993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법시험에서 몇 번이나 1차에서 떨어졌다. 가족을 볼 면목도 없었고 주위의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도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나이는 들어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으며 합격에 대한 갈망은 더 커졌으나 자신감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어둠의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해도 시험에 떨어져 절망감에 젖어서 지리산을 찾았던 것이다. 정상에 가장 가까운 중산리에서 하루밤을 자고서 아침 곧바로 천왕봉을 향해 출발하였다. 점심 무렵 도착한 천왕봉에는 등산객이 거의 없었으며 단지 5명의 여대생들만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세석산장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천왕봉에서 세석산장까지의 거리는 반나절을 계속 걸어야 하는 먼 거리였고 저물기 전에 도착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걸었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산장의 산지기(당시 나이로는 약30대 중반 정도로 생각됨)는 앞 마당에 헬리콥터가 산더미처럼 내려놓은 음료수며 술과 라면 등 생필품을 안으로 나르고 있었다. 





그러나 산장지기 혼자 날라도 저물 때까지 나를 수 없는 양이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산지기는 나보고 “거 아저씨 이거좀 날라요”라며 거의 쉴 틈을 주지 않고 강제적으로 일을 시켰다. 하루종일 지친 나는 영문도 모르고 음료수를 산장 안으로 날랐다. 그런데 얼마후 천왕봉에서 만났던 여대생들도 도착하였다. 산지기는 그 여대생들에게도 역시 강제적으로 나르게 했다. 그녀들 역시 영문도 모르고 음료수박스를 날랐다. 


저녁이 되었고 나는 산장에서 담요를 펴고 잠을 청하였다. 지리산에서는 산장에서 잘 때 담요 값2000원을 내야 했는데 잠이 들 무렵 산지기는 나에게 돈2000원을 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해 준 게 얼만데 꼭 받아야 하나”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잠을 막 들려고 할 무렵 그 산지기는 나를 깨웠다. 그리고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산지기는 실은 다른 사람들과 형평 때문에 나에게 돈을 받은 것이었다. 





내가 주방으로 갔을 때 같이 고생하였던 여대생들은 이미 저녁 준비를 거의 한 상태였고 술상도 잘 봐 두었다.

나는 그곳에서 엄청 술을 먹었다. 그 산지기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끝날줄 몰랐다. 그녀들이 지리산을 찾은 것은 서울교대졸업반인데 졸업기념이라고 하였다. 


조금은 넉넉한 한 여대생은 나에게 내일 어느 곳으로 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침일찍 한신계속쪽으로 갈 거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다음날 일찍 일출을 보기 위해 세석산장 인근의 촛대봉으로 일출을 보러 갔다. 마침 바람이 많이 불어서 일출은 보지 못하고 흰 옷을 휘날리며 봉우리를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대생이 나에게 오라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빨리 내려 갔다. 그런데 그 여대생은 내가 아침 일찍 내려 간다고 하여 나를 위하여 아침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일찍 간 줄 알고 걱정했다며 아침을 먹을 것을 권하였다. 눈물 날 정도로 너무나 고마웠다. 시원찮게 생긴 남루한 어느 나그네의 새벽길을 위해서 아침을 준비해 주었던 것이다. 아마 나는 평생 나를 위해 아침을 마련해 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일찍 한신계곡을 내려 왔다. 


그 한신계곡은 내가 본 산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계곡이었다. 마치 신선이 놀고 있는 계곡 처럼 착각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코스는 백무동 계곡과 달리 사람의 발길이 별로 없었고 훼손도 거의 없었다. 혼자 보기는 아까웠다. 





나는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 왔다. 


그리고 그 다음해 사법시험1차에 합격할 수 있었고 1998년 드디어 나의 긴 어둠의 터널에 희망의 빛이 보였다. 





나의 합격을 가장 기원해주고 헌신적으로 나를 뒷바라지 하였으며 나를 가장 사랑하셨던 할머니는 나의 합격을 보지 못하고 그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부족한 나를 누구보다도 믿어주었고 물질적인 도움에도 앞장선 친구 덕연이도 내가 보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먼저 우리곁을 떠났다.

 




나는 그동안 앞만 보며 달려 왔고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늘 고민하면서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였다.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그녀와 내가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그 사랑을 깨달은 나를 아끼고 아낌없는 사랑을 준 할머니, 먼저 세상을 떠난 넓은 마음을 가진 친구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