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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순간의 실수

by 권오갑변호사 2015. 11. 16.

순간의 실수





나의 사무실에 삶에 지친 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아왔다. 두 분은 자신의 아들이 구속되어 있고 재판을 받고 있으니 사건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뜻하지 않게 청소년의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사건을 수임하게 되었다. 


위 법 제10조 제1항은 여자청소년에 대하여 강간을 한 자는 5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을 정도로 청소년에 대한 강간은 중범죄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피고인은 바로 이러한 범죄로 기소되었고 13세와 17세의 2명의 청소년을 강간한 사건이어서 마치 파렴치범으로 생각되기에 충분했다.





나를 찾은 부모들은 사건의 진상을 잘 모르고 있었고 나는 사건기록을 열람등사한 뒤에야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사자인 피고인을 접견하였고 막상 만나본 결과 너무나 착한 청년이었다. 사건 기록을 파악한 나는 피고인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건해결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사건의 개요는 30세도 안된 피고인(이하에서는 갑이라고 함)이 어머니가 하는 식당을 도와주기도 하고 자신의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인터넷채팅으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여자는 다름 아닌 만17살인 A양이었다. 갑은 막상 만난 A양이 외모와 달리 실제 나이가 어리자 교제를 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A양은 거처할 곳이 없다며 수시로 연락을 하고 갑의 집에 기거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던 만13세의 B양도 갑의 자취집에서 같이 생활하였다. 그러자 갑은 식사비용 등도 들어서 계속 있도록 하기 어려워 어린학생들을 타일로 보기도 하고 집을 나가라고 하였으나 막상 갈 데가 없는 이들은 몇 달을 갑의 방에서 기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이 늦게 귀가하였을 때 A양과 B양은 술을 먹고 있었고 갑에게 술을 권유하였다. 


이날 밤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그러나 갑은 실제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관계를 요구한 측은 A,B였고 성행위도 여러 자세를 취하고 두 사람이 주도하였다.

 




그 뒤 시간은 흘러 집을 마음데로 드나들던 A,B는 갑의 집에서 물건을 훔처 나오다가 순찰중이던 경찰에 잡혔다. 


경찰에서 A,B는 절도죄로 처벌될 것이 두려운 나머지 갑의 집에 들어간 이유가 갑으로부터 강간을 당하였기 때문이라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A의 진술에는 집을 나온 뒤 PC방, 여관, 비디오방, 공중화장실 등에서 12번 정도의 성관계를 하였고 이중 돈을 받지 않은 것은 모두 강간을 당하였다고 진술한 내용도 있었다. 





이에 경찰은 갑에게 전화로 피해물품을 점검해야 한다고 경찰서로 나오게 한 뒤 곧바로 체포하여 구속하였던 것이다. 


1심에서 나는 열심히 피고인을 위하여 변호하였다. 나는 A,B의 진술을 부인하였고 이에 검찰은 13세인 B양을 증인으로 신청하였다. 통상 강간사건에서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내는 경우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가급적 증인으로 소환하지 않거나 소환한다고 하더라도 화상신문을 하도록 하고 있다. 





보호센터에 있던 B양은 보호담당직원과 같이 별도로 마련된 방에서 나의 반대신문에 답하였다. 그러나 화상심문은 실제 반대신문을 하면서 추궁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었다. 내가 중요한 부분에서 추궁을 하면 울었고 대답을 회피 하다시피 하였다. 


나는 실제 여러 사정을 들면서 강간이 아니라 화간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나는 A,B양의 여러 정황들과 성관계에 이른 경위, 성행위에서 반항정도(서로 샤워를 한 사실, 한 사람이 두 사람을 강간하는 것이 어려운 사실, 피해자들이 이미 타인과 수차례 성관계를 하여 온 점, 경찰에서 피해자들이 반항한 사실이 진술되어 있지 않는 점, 검찰에서 피고인에 대한 거짓말탐지기에서 피고인의 진술이 진실로 판정 된 점 등)에 대하여 변론을 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갑에게 징역4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나는 처음에는 나이가 어리다고 모두 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어린이도 거짓말을 하며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눈물에 사실판단을 소홀히 하고 실체진실을 외면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사건의 진상을 떠나 재판부에서 왜 중형을 선고하였는지에 대하여 고민하였고 재판부의 입장을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다. 즉 비록 청소년들인 A,B양이 갑과 성관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나이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정도로 성숙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화간이라는 나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나는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서 피고인의 부모와 상담하였다. 피고인의 부모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합의금으로 각100만원만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돈으로 피해자의 부모와 합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오히려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해 해 보기로 했다. 나는 피해자의 부와 정중하게 사죄를 먼저 하였고 그리고 나서 내가 전화를 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나는 사건의 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하였고 경찰에서 보호자를 불렀을 때 어느 정도 들었던 부분이라서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보호를 제대로 해 주지 못한 부분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나는 피해자들의 부모들의 질책과 원망을 가해자를 대신하여 그대로 받았고 피해자들의 부의 말에 대부분 동의를 하였다. 이러한 대화로 피해자들의 부는 분노가 가라않는 듯 가해자의 부모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고 의외로 적은 금액으로도 피해자를 자극하지 않고서 합의서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고 피고인의 잘못을 거듭 사죄하였으며 피해자들이 하루 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 올수 있도록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항소심 재판에서 나는 합의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은 풀려날 수 있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나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한 통화하였을 뿐 피고인은 어떤 연락도 없었다. 나는 비록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역할이자만 한편으로 피해자를 너무 배려하지 못한 변호가 아니었는지 고민하였다.





그리고 나는 A,B양이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은 피고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사회모두의 책임일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고 아픔이 치유되기를 바라며 한편으로 피고인도 순간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건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기원한다.